지극히 사적인 일기 1
(이 글은 지극히 사적인 글이므로 읽어도 득될 것이 없음)
수십가지 딜을 다루다 문득 쓰는 글
사대부들은 비판받아야 한다. 기득권을 위해 농사만 짓게 해놓고 자신들은 풍족하게 살았다.
상인들이 장사로 돈 좀 벌려고 하자 천시했다. 박제가는 반박한다.
"너희들이야말로 온갖 혜택을 누리는 좀벌레가 아니냐?"
도덕적 이상만으로는 사회를 진보시킬 수 없다. 일단 먹고 살고 편하게 자야 사회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굶주린 이데올로그는 가장 나쁘다. 게다가 당시 유생들은 명나라의 복수를 하자며 천연덕스럽게 '북벌론'을 유지했다. 이런 정신승리는 국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용후생
백성이 사용하는 기구 따위를 편리하게 하고, 의식을 풍부하게 하여 생활을 윤택하게 함이다.
뜬금없이 나는 이를 사모펀드에 투사하고자 한다.
사모펀드(private Equity Fund)란 소수의 몇몇만 자본을 투자해서 수익을 보는 펀드이다. 가장 유명한 방식은 차입매수(LBO)이다. 쉽게 말하면 신약을 개발한 오르비제약회사가 있다고 하자. 이를 알아본 몇몇 투자자가 거액을 투자한다. 마케팅도 펼치고 전세계에 지부도 내고 특허도 따고 아무튼 다 한다. 그래서 수익을 엄청나게 내고 3~5년뒤쯤 기업가치는 10배이상 상승한다. 그럼 이걸 팔고 차익을 남긴다. 회사도 경영하고 차익도 남기고 이게 단순히 투자만 하고 니들 잘하기만 바라는 주식과 다른 점이다.
물론 욕도 처먹는다. 단기 수익성에 천착해 비중이 높은 인건비를 줄인다. '구조조정'이라 하고 '대량해고'라 읽는다. 사모펀드는 연봉도 높은 편이다. 블랙스톤의 경우 직원 평균연봉이 10억원이다.
사모펀드는 정말 좋은 것일까. 사실 별다른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단기 성과에 천착하기 때문에 결국엔 기업을 망가뜨리는 수도 있다. 운영권을 저쪽에 이쪽으로 옮기는 건 부가가치와 객관적으로 관련이 없다. 물론 정신못차리던 기업을 사서 혁신하여 가치를 올리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건 사후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또 (투자자로서) 진입장벽이 매우 높고 소수의 부유한 투자자들만을 위한 것이라는 비판도 받는다. 근데 뭐 사모펀드의 명암에 대해서는 차후 후술하기로 하고..
이에 이용후생을 도입하자면 경영을 잘 하여 회사의 근로자들을 편안하게 하고 이로 인해 성과를 증대하여 주주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경영철학 정도로 러프하게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펀드를 조성하며 이용후생에 눈을 돌리게 된 계기는 이렇다.
먼저 나의 과거를 반추해볼 필요가 있다.
대학 입학 당시 만능엔터테이너가 인기를 끌었다. 난 좀 더 확장해서, 만능낭만주의자가 되고 싶었다.
만능 낭만주의자가 되기 위해선 3가지 능력이 필요하다. 지적 능력, 신체적 능력 그리고 미적 능력이다.
혹자는 왜 돈 혹은 여자 이런 게 아닌가 하겠지만 그건 저 셋이 갖추어지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다. 지적/신체적 능력을 갖추고 미적으로 우수한데 돈과 여자 복이 없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체적 능력과 미적 능력은 담에 이야기하기로
오늘은 내가 좀 똑똑해보기 위해 어떤 것을 목표로 삼았고, 무엇을 해왔는지, 성과가 어떠했는지 커리어 관점에서 논해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똑똑하지 않다. 이 말은 몇 년 전에도 통용되고 몇 년 후에도 유효하다. 무조건 이렇게 말하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심지어 스티븐 호킹같은 사람도 저렇게 이야기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다.
내가 똑똑해지고 싶었던 이유는 똑똑하게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난 상당히 장난을 좋아하고 외모는 운동선수를 연상하게 하는 덕에, 학창시절 외모는 지적 능력과 좀 거리가 있었다. 싸움 좋아하고 운동 잘 하는 애가 공부까지 잘한다고 했을 때의 그 반응을 즐기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그게 부끄럽게도 재수할 때였다.
똑똑하게 보이기 위해서는 3가지 스마트함이 필요하다. 난 이를 다음과 같이 보는데 바로 북스마트(Book Smart), 소셜스마트(Social Smart), 뉴스스마트(News Smart)이다.
북스마트는 아주 전통적인 수험성을 무대로 하는 영역이다. 당신들이 하는 수능공부, 미래에 하게 될 법학/의학 공부, 각종 고시들이 이에 속한다. 수험서를 보고 이해한 뒤에 외운다. 그 다음 반복하고 이걸 현출한다. 북스마트는 단언컨대 이걸로 요약 가능하다. 속칭 '공부를 잘 한다'는 친구들은 이쪽에 속한다. 직업으로 보면 변호사, 의사, 회계사 이런 일을 하기 위해 요구된다.
소셜스마트는 커뮤니케이션을 무대로 하는 영역이다. 주위에 보면 책 서평만 읽고 전체 한 권을 읽은 것처럼 부풀리는 놈, 가진 거라곤 살쪼가리밖에 없는데 여기에 뼈를 바르고 붙여서 하나의 서사를 완성하는 놈, 아주 어려운 개념도 심심이도 이해할 수 있게 잘 설명하는 인간들이 있는데 이들은 소셜스마트가 뛰어나다. 거의 대부분의 입시 강사는 여기에 능하다. 말(만)잘하는 김제동, 진중권도 이에 속한다. 직업으로 보면 아나운서, 컨설턴트, 강사 같은 일을 하기 위해 요구된다.
뉴스스마트는 정세와 통찰력을 무대로 하는 영역이다. 시류에 민감하고 시사에 밝다. 자신이 사는 세계를 구조적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큰 상식의 결함이 없다. 간혹 뛰어난 상아탑을 이룬 학자가 아주 기초적인 개념조차 몰라 놀래키는 경우가 있는데 그들은 뉴스스마트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검찰이 사법부에 속한다든가, 스위스 수도가 바젤 혹은 취리히 아니냐는 친구들은 좀 더 시사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주위에 보면 뭘 물어봐도 이 새낀 어느정도는 다 대답할 것 같은 애들이 있다. 그런 이들은 뉴스 스마트가 뛰어나다. 주로 정치인, 언론인, 작가 같은 일을 하기 위해 요구된다.
난 이 셋을 다 거머쥐고 싶었다. 북스마트는 별 거 없다. 엉덩이 싸움이다. 앉고, 집중하고, 이해하고 반복한다. 모든 고시류의 시험은 이 4가지로 다 극복할 수 있다. 당신이 인서울대학 올 정도의 지능만 있다면 무조건 가능하다. 따라서 누구나 가장 쉽게 정복할 수 있는 영역이면서 앉아있는 게 싫어 가장 기피되는 영역이기도 하다.
소셜스마트는 사람에 대한 관심 그리고 남의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 인내를 요구한다. 평소 말하기를 좋아해야 말도 잘 하고 생각하길 좋아해야 정리된 생각을 말할 수 있다. 컨설팅회사에서 인턴을 뽑을 때 순발력을 테스트하기 위해 불의의 질문을 던질 때가 있다. 이 때 자신의 순발력을 과시하려고 1~2초 남짓하는 순간 안에 대답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가차없이 탈락이다. 10초 정도 생각할 여유가 필요하다는 그 생각을 그 사이에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에이스들은 그 경우 예외없이 "잠시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곧잘 말한다. 물론 그 1~2초 안에 감탄할 정도로 정돈된 생각을 말하는 친구가 아주 가끔 있다.
뉴스스마트는 얼마나 신문을 읽느냐이다. 다시 말해, 얼마나 핸드폰으로 포털뉴스를 읽어제끼냐가 아니라, 신문을 읽느냐이다. 내가 말한 신문이란 일간지만 일컫은 것이 아니라 지면으로 된 모든 주간/월간지를 포괄한다. 난 당신이 얼마나 시사에 밝은지 10초안에 알아낼 수 없지만 당신이 조선/중앙일보와 시사in/르몽드디플로마티크를 읽는다면 기꺼이 수긍하겠다.
경영컨설팅은 여기서 북스마트와 소셜스마트의 조합을 요구한다.
처음 들어갔을 때 프로젝트는 모 회사의 M&A 프로젝트였다. 클라이언트는 IB. IB는 대개 까탈스럽다. 선수끼리 잘 알기에 피곤하다.
어떤 프로젝트냐면, 예를 들면 그 해외 IB가 우리나라 전도 유망한 게임사를 인수하려 한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거대 게임사가 한국에 진출한다네? 그럼 마켓쉐어가 깎일텐데 가격을 얼마정도로 해서 입찰하면 좋을까? 고민한다. 그 때 컨설팅을 맡긴다. 평가는 크게 재무(회계법인), 법률(로펌) 그리고 전략(컨설턴트) 이렇게 나뉘는데 당연히 우리는 전략을 했다. 그 부분에서도 숫자로 표현되지 않는 가치인 모멘텀을 위주로 한다.
사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예측하는 건 엄밀히 말하면 사기에 가깝다. 그 경우 최대한 비슷한 케이스를 찾는 게 도움이 된다. 나는 일본에서 비슷한 정도로 전도유망한 회사가 있음을 알았고 일본에 그 거대게임사가 진출했음도 알았다. 따라서 그 비슷한 일본의 회사가 어떻게 대처하여 어떻게 매출을 유지했는가가 주요한 포인트였고 들여다봤더니 실제로 이 회사는 잘 대처해낸 경험이 있었다. 이렇게 타겟을 잡으면 이 기업이 어떤 전략을 썼는지 당시 경영진은 어떤 마음으로 임하였는지, 거대회사 진출 임팩트는 실제로 산업 M/S를 키웠는지 아니면 유지하면서 자신들만 팽창했는지 등등을 따져본다. 내가 쓰면서도 재미없는데 실제로 해보니 더 재미없었다.
그 다음 프로젝트는 캐피탈회사의 신성장동력 프로젝트였다. 당시 중고차를 싸그리 인증하여 파는 모델을 세워봤는데 SK엔카에서 보았듯이 쉬운 게 아니다. 중고차는 차보다 사람(차팔이)이 더 중요한 비즈니스라 그렇다. 이 떄도 나는 일본회사 벤치마킹을 열심히 했다. 일본은 실제로 차를 대여해서 타는 BM이 정착되어 있었고 이 부분의 가능성을 봤다.
그 다음 프로젝트는 국내 모그룹의 해외진출 전략프로젝트였다. 크게 의료, 건축, 석탄화학, 주택 등이 있었다. 나는 의료를 제안했다. 그 국가는 빈부격차가 컸지만 의료인프라는 부족하기 짝이 없었고 고급 의료에 대한 수요가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그룹의 병원이 국가에 진출하여 잘 안착했다.
모든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느낀 가장 큰 리스크는 아이러니하게도 비즈니스 리스크가 아닌 리걸 리스크였다. 법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백날해봐야 소용없는 것이다. 북한에 개성공단 지어봐야 나가라 하면 나가야 되는 것이다.
PEF 숫자도 많아지고 이행액도 많아지는 상황에 많은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일단 흥미롭다. 비즈니스적으로, 혹은 재무적으로만 들여다보다 내가 배운 근자의 기술을 써먹는 것도 괜찮다. 컨설턴트에게 요구된 능력이 단기간에 많은 지식을 효율적으로 빨아들이는 것이다. 먼저 목적을 정의하고 목적달성에 필요한 것들을 정리한 뒤 이를 효율적으로 습득하기 위한 수단을 값비싸게 사들이는 것이다. 어차피 더 비싼 가치를 창출할 테니까.
컨설턴트가 되기 위해서는, 효율을 중시하는 습득력, CEO앞에서도 아는 척 하는 자신감, 단어 하나에 단서를 캐치하는 인내력이 가장 중요하다.
혹여나 지망한다면 명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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