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을 수, 없는 너.
닿을 수 없는 너.
'저희는 그렇게 될 수가 없어요'
그때 처음 깨달았다. 진정성이 담긴 한마디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각인 될 수 있다는 것을.
작년 7월 고온으로 아스팔트가 들 끓던 여름,
나는 어느 봉사단체와 함께 2박3일의 교육캠프일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대상은 고등교육을 밞고 있는 탈북자 학생들.
나이는 적게는 열다섯부터 많게는 스물대여섯.
사용하는 언어들도 제각각이었다.
중국어만 사용할 줄 아는 학생. 북한 억양이 섞인 한국말을 하는 학생,
조선족에서 건너와서 연변사투리를 사용하는 학생 등.
나이와 언어보다도 복잡한 것은 그들의 사연이었다.
배고픔에 못 이겨 연변에서 가족들과 함께 밀입국한 가정.
부부싸움으로 판단력이 흐려진 아버지가 아이들을 대리고
'바다 구경 시켜줄께'하며 나갔다가 배를 타고 떠나,
어머니를 북한에 놔두고 탈북한 아버지와 아이들.
미래에 대한 심각한 불안과 지금 당장의 굶주림 때문에
작은 보조기구하나를 벗 삼아 북한에서 남한으로 수영해왔다는 아이.
또는 글로 옮기기도 버거운.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나 있을법한 사연들까지,
그때 처음 생각보다 세상엔 내가 모르는 사연들이 많더라는걸 느꼈다.
같은 민족이지만 차이가 점점 커져간다는 사실을 교과서로만 배웠던 나는,
현실에서 펼쳐지는 파노라마 사진같은 광경에 약간은 얼어버린 자세로 캠프에 임했다.
그 캠프를 위해 한달 전부터 사무실에 나가서 학생들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캠프 자체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일상이 지루했던 1학년 이었던 나는, 처음으로 캠프를 준비한다는 생각에
캠프에 애착도 생기고 흥미도 느꼈다.
약간의 사연도 있었지만(?) 나는 학생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역할이 아닌뒤에서 다음 행사를 준비하는 스태프역할을 맡았다.
행사 전에는 한 발자국 앞에서
행사 후에는 한 발자국 뒤에서
가까이 혹은 멀리서.
추억되고 기억될 하루하루를 위해 열심히 땀 흘리며,
군대(?)에서나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익숙하지 않은 일들을
경험할 생각에 왠지 모르게 설레였다.
하루의 캠프 일정을 끝마치고 모든 봉사자들이 모여 치킨을 시켜놓고
그 날에 대한 이야기와 다음날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피드백중에 어느 한 봉사자가 그러더라.
학생들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저희는 그렇게 될 수가 없어요.'
처음에는 어떤 이야기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뒤에 덧붙이는 이야기를 들으며 깨달았다.
그러한 이야기를 유발시킨 기저에는 우리들의 프로필이 놓여있었다.
학생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주었던 개개인에게 맞춰진 수업자료 뒤에는
봉사자들의 신상과 스펙이 적혀있었다.
탈북학생들이 보기엔 문자 그대로 봉사자들의 스펙이 '넘사벽'이었나 보다.
물론 나는 스펙이 삼수한 것 밖에 없지만 같이 봉사한 분들 중에는
스펙을 넘어 ‘전설’로 까지 불릴만한 인재들이 많았다.
단체 입장에서는 단체의 신뢰성과 위신을 살리고 싶어
보여지는 이미지에 치중했던 것인데,
그것이 아이들에게는 벽으로 느껴 졌었나보다.
'저희는 그렇게 될 수 없다'
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봉사자의 말을 듣던 방의 분위기는 차가워졌다.
대표님은 당황하던 봉사자들을 수습하기 위해 종군기자의 이야기를 하며 노력하셨다.
순간 모두가 차가워진 이유는 ‘저희는 그렇게 될 수가 없다는’
그 이야기를 하는 학생에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혹은 봉사자들은 나와 남들을 위해서 스펙과 경력을 쌓았지만
'그렇게 될 수 없다는' 학생의 이야기에,
건널 수 없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벽을 피부로 느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인간은 타인들에게 어느 정도까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까.
마네킹이어도 상관없을 사람이 풍경으로써만 존재하는 세상,
네트워크 안에서 70억 지구인이 모두 나와 친구라는 세상. 에서
나와 당신의 관계, 우리와 당신들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영향력의 효용은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저 또한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익명의 타인들을 만날 기회가 많습니다.
그러면서 배우는 것은,누적되는 시간의 흐름 속,
푸르른 소나무에 그려지는 나이테의 모습이 제각각이듯,
인간 또한 누구나 제각각의 사연과 고민은 가지고
세상에 임한 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거운 의문들이 떠오릅니다.
제가 그들의 사연과 고민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고 묻는 타인들에게
’응,그래 너는 어떻게 해라.‘ 혹은 ’너희들은 이렇게 되야해!‘
라고 해도 되는건지. 이런 의문들 말입니다.
사람들에게는, 겉으로 보여지는 것,
혹은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것들은 한계가 있더군요.
보여지는 것이 믿는 것이 되어버린 이미지의 세상이라는 한계,
혹은 언어로써는 자신의 삶의 흔적들과 생각들을
충분히 드러낼 수 없는 인간적 한계가요.
그러한 제약 속에서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는
‘너’와 ‘나’의 관계는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지요.
모호한 관계의 ‘너’와 ‘나’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은 어떻게 잡아야 할지요.
이러한 한계를 받아들인다면 동일한 시대 속에서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난 우리들의 같은 주제의 고민은 정녕 같은 것 일지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상황은 같을지라도
우리가 도달한 그 생각의 과정과 출처는 같은 것 일지요.
어쩔 수 없이 제각각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타인에게 삶에 ‘가이드 라인’을 제시해 주는 것이 타당할지요.
물론 관계 속에서 영향력을 주고받는 것은 필연적이지만,
과연 어디까지를 우리가 도달 할 수 있고 도달해도 되는 것 일지요.
닿고 싶지만 닿을 수 없는 타인들을 바라보노라면
정현종 시인의 ‘섬’이라는 시 하나가 떠오릅니다.
섬
정현종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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