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지우개 [606672] · MS 2015 · 쪽지

2015-10-27 17: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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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일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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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0년 5월 24일


 어제 저녁을 먹은뒤 기필코 일기를 쓰기로 마음을 먹었었는데..제일 친한 동료놈중 하나가 갑자기 죽어버리겠다고 밥을 먹던 도중 난리를 치길레 그 녀석을 달래주느라 일기 쓸 시간이 나질 않았다. 
 
 간단히 얘기하자면, 이 녀석은 5수생이다. 고등학교는 2학년때 자퇴를 해서 , 졸업장을 따진 못했지만.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바로 수능을 준비하던 녀석이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검정고시를 보고 바로 수능을 준비한다는건 매우 어렵다. 머리가 좋다면 좀더 수월하게 공부를 할수 있겠지만..뭐..얜 딱히 머리가 좋은편도 아니어서 더더욱 힘들었다.

 친구 얘기가 나온 김에, 오늘 일기는 친구에 대해서 쓰기로 마음먹었다. 
얜 24살 까지 수험생활을 하다가 25살때 재판을 받고 6년형을 선고 받았다. 22살이 되고 군대갈 나이가 되었는데, 얜 공익판정을 받은 사회복무요원이었다(내 안에서 해병대의 피가 끓는구나...공익이라니) 어릴적 십자인대가 나가버려 운 좋게 얻게된 공익생활은 남들보다 수능공부를 하는데 가산점이 되어야 했지만, 이 멍청한 놈은 이 가산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허구한날 술을 마시고 친구들과 홍대를 싸돌아 다녔고. 부모님에게서 받은 용돈으로 책을 사기 보단 유흥과 도박에 쏟으면서도 수험생이라는 그 알량한 신분으로 부모에게 갑질을 해댄것이 화근이었다.
 
 가끔 얘의 친구가 면회를 올때면, 아주 몰래 술을 숨겨가지고 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 술은 받은 날 바로 먹어치워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매일 매일 점심과 저녁을 먹다가 술안주로 좋겠다! 싶은 반찬이 나오면 간수들 몰레 주머니에 넣고선 킥킥 거리며 돌아오곤 했다.
 보통은 부침개라던가..낙지무침 같은 평범한 안주들이 주를 이루었고, 몇몇은 자기 먹을 밥을 봉다리에 싸가지고 온 녀석들도 있었다. 이런경우에는 한잔만 달라는 뜻이다. 
 또 잡담이 길어졌는데...얘가 술을 한잔 두잔 마시다 보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알코올 냄새가 밖으로 세어나가지 않도록 병을 통채로 주둥이에 가져다 대고, 꿀럭꿀럭 거리며 술을 마시다보면, 차갑고 절망만 남아있을것 같았던 감옥에서도 실낱같은 재미와 희망이 속속들이 피어난다. 무에서 유를 찾는다고 해야할까, 범죄자라는 자신의 현실을 잠시나마 망각하기 위해 몸안에 쓰디쓴 알코올을 들이붇다 보면, 얜 항상 이런말을 했다.

'내가 ..1년만 더하면 진짜 잘갈수 있는데..라고'

'왜..부모는 이런 내 상황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것이냐고'

'자식이 공부를 하다보면, 스트레스를 받아서 게임을 할수도 술을 마실수도 있는데..세상은 진짜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난 얘의 이런말을 들을때마다, 당장이라도 술병을 깨부숴서 술을 꼴딱꼴딱 삼켜대는 이녀석의 목줄기에 날카로운 유리날을 난도질해버리고 싶은 생각이 수도없이 들었다(내가 정말 범죄자가 된 기분인걸) 내가 아무말도 대답하지 않으면, 얘도 내가 화난걸 눈치챈뒤 살며시 화제를 다른쪽으로 돌린다. 이런날이 있고 난뒤에는 3일정도 말을 걸기가 어색해진다. 술이 웬수지
 개인적으로 , 6년후에 사회로 나갔을때 얘의 부모가 이놈을 호적에서 파버리거나, 아니면 차라리 부모가 죽어있는게 좋을것 같다라는 생각이 든다. 6년후 다시 수험생활을 시작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는 부모의 가슴은 또 다시 미어질 것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같아서 과일을 주러 방문을 열었을때, 해드셋을 낀채 게임에 열중하던 아들의 모습을 또다시 보게 되면. 그리고 그 아들의 입에서 '죄송합니다'가 아니라, '아니..! 공부하다가 좀 할수도 있지 왜그래?' 라는 말을 듣게 되면 이 말 한마디가 벌려놓은 상처의 깊이는 마리아나 해구보다도 몇십배는 깊을 것이니까. 이 일기를 그들의 부모가 볼수 있다면 한마디 해주고 싶다. 
'어머니 , 6년후 아들이 찾아왔을때 죽던가 죽이던가 하세요, 그게 훨씬 편할겁니다'(정말 범죄자가 되버린 느낌을 물씬 든다. 일기에서 지워버릴까 하고 지우개를 찾았는데..아무래도 잃어버린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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