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코프스키 [1332076] · MS 2024 · 쪽지

2024-10-05 13:13:47
조회수 2,319

10분만에 훑어보는 철학 독서(초급편)

게시글 주소: https://tcgjztg.orbi.kr/00069381980

<얻어갈 개념어들>

유사성 논증(argument by analogy), 미세 조정 논증(fine-tuning argument), 단일 표본 추론의 한계

변신론(theodicy), 자유의지 옹호론, 영혼 성숙 변신론(soul-making theodicy), 증거적 악의 문제(evidential problem of evil)

인식론적 책임, 제임스의 선택지 개념, 증거주의

부조리(the absurd), 자유 선고(condemned to be free), 악의(mauvaise foi)

파스칼의 내기, 피데이즘, 러셀의 찻주전자 비유



안녕하세요 독서칼럼에 진심인 타르코프스키입니다.

오늘은 철학 초급 주제를 바탕으로 지문을 제작해보았습니다.

이제 서론 읽을 시간도 없습니다.


핸드폰 켠 김에, 지적설계론, "악의 문제", 실존주의, 실용주의를 소개한 아래 지문을 읽어보세요.



(좋아요 누르고 시험운 받아가세요!)


출처: https://thecrashcourse.com/topic/philosophy/


참조 및 재구성.



(연습문제 1)


우주의 정교한 질서와 복잡성은 지적 설계자의 존재를 시사한다는 목적론적 논증(teleological argument)은 철학과 종교의 접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논증은 18세기 영국 철학자 윌리엄 페일리(William Paley)의 시계공 비유(watchmaker analogy)로 유명하다. 페일리는 정교한 시계를 발견했을 때 우리가 자연스럽게 지적인 제작자를 상정하듯, 자연계의 복잡성 역시 신적 설계자를 암시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유사성 논증(argument by analogy)의 전형으로, 두 상황 간의 유사점을 토대로 결론을 도출하는 귀납적 추론(inductive reasoning)의 한 형태다. 목적론(teleology)은 그리스어 'telos'에서 유래하여 '목적' 또는 '종말'을 의미하며, 현상을 그 목적을 통해 설명하는 접근법이다. 그러나 이 논증은 여러 비판에 직면했다. 데이비드 흄(David Hume)은 세계의 불완전성과 악의 존재가 완벽한 설계자 개념과 상충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진화 생물학은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과 무작위 돌연변이(random mutation)를 통해 복잡한 생명체의 발생을 설명한다. 이에 대응하여 현대의 옹호자들은 확률적 추론을 도입했다. 리처드 스윈번(Richard Swinburne)은 우주의 정밀한 조건이 우연보다는 신의 설계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미세 조정 논증(fine-tuning argument)은 우주 상수의 정밀한 조정이 의도적 설계를 시사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확률적 접근은 단일 표본(우리 우주)에 기반한 추론의 한계를 지닌다.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의 토끼 꼬리 비유는 목적의 무분별한 부여가 인간중심적 오류를 낳을 수 있음을 경고한다. 결국 목적론적 논증은 존재의 본질, 유추의 타당성, 우주의 질서 해석에 관한 근본적 철학적 물음을 제기하며, 과학, 논리, 신앙의 관계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를 촉진한다.

<틀린 선택지>
- 데이비드 흄은 우주의 완벽성이 신적 설계를 입증한다고 주장하였다.
- 진화 생물학은 자연선택과 계획된 돌연변이를 통해 생명체의 복잡성을 설명한다.
- 리처드 스윈번은 우주의 조건이 우연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 버트런드 러셀의 비유는 우주에 목적을 부여하는 것이 합리적임을 강조한다.
- 목적론적 논증은 과학과 신앙 간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힌트>
- 데이비드 흄은 실제로 완벽한 설계자 개념과 상충되는 세계의 불완전성과 악의 존재를 지적하였다.
- 지문에서는 진화 생물학이 무작위 돌연변이를 통해 복잡성을 설명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 리처드 스윈번은 우주의 조건이 우연보다 신의 설계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였다.
- 버트런드 러셀은 목적의 무분별한 부여가 인간중심적 오류를 낳을 수 있음을 경고하였다.
- 목적론적 논증은 과학, 논리, 신앙의 관계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를 촉진한다고 되어 있다.

<틀린 선택지>
- 윌리엄 페일리의 시계공 비유는 자연계의 복잡성이 신적 설계자의 존재를 필연적으로 증명한다고 주장하며, 이는 연역적 추론의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는다.
- 목적론적 논증에 대한 비판들은 모두 철학적 논리에 근거하고 있으며, 과학적 발견이나 경험적 관찰과는 무관하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 리처드 스윈번의 확률적 추론은 다중 우주론을 토대로 하여, 무한한 우주 표본을 바탕으로 신의 존재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다.
- 버트런드 러셀의 토끼 꼬리 비유는 목적론적 사고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인간중심적 관점에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철학적으로 가장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 현대의 목적론적 논증은 과학적 발견과 철학적 논리를 완벽히 조화시켜, 신의 존재에 대한 결정적이고 보편적인 증명을 제시하는 데 성공했다.
<힌트>
- 시계공 비유는 귀납적 추론의 예시이며, 필연적 증명이 아닌 유사성에 기반한 논증이다.
- 목적론적 논증에 대한 비판은 철학적 논리뿐만 아니라 진화생물학 등 과학적 발견에도 기반한다.
- 스윈번의 추론은 단일 표본(우리 우주)에 기반하며, 다중 우주론을 직접적으로 활용하지 않는다.
- 러셀의 비유는 목적의 무분별한 부여에 대한 경고로, 인간중심적 관점을 비판한다.
- 현대의 목적론적 논증은 여전히 논쟁 중이며, 결정적이고 보편적인 증명을 제시하지 못했다.

<틀린 선택지>
- 윌리엄 페일리는 시계공 비유를 통해 자연계의 복잡성이 엄격한 인과 법칙에 따라 자연적으로 발생한다고 주장하며, 이는 기계론적 세계관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될 수 있다.
- 데이비드 흄은 목적론적 논증을 옹호하며, 세계의 불완전성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의 의도를 이해하기 위한 인간 이성의 한계를 드러낸다고 주장했다.
- 진화 생물학은 목적론적 논증을 완전히 부정하며, 자연 선택과 돌연변이라는 무작위적인 과정만을 통해 생명체의 복잡성을 설명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 리처드 스윈번은 우주의 탄생과 진화를 다중 우주론(multiverse theory)으로 설명하며, 우리 우주는 무수히 많은 우주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 버트런드 러셀은 토끼 꼬리 비유를 통해 인간이 우주의 목적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며, 이를 통해 윤리적 규범을 도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힌트>
- 윌리엄 페일리는 시계공 비유를 통해 자연계의 복잡성이 지적인 설계자를 암시한다고 주장했으며, 이는 기계론적 세계관을 지지하는 주장이다.
- 데이비드 흄은 목적론적 논증을 비판했으며, 세계의 불완전성이 완벽한 설계자 개념과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 진화 생물학은 목적론적 논증과 양립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며, 일부 학자들은 진화 과정에 신적 개입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 리처드 스윈번은 다중 우주론을 거부하며, 오히려 우리 우주의 정밀한 조건이 신의 설계일 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사한다고 주장한다.
- 버트런드 러셀은 토끼 꼬리 비유를 통해 인간이 우주의 목적에 대해 함단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을 경고하며, 이는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이 글에서 얻어갈 개념 3가지>

- "유사성 논증(argument by analogy)"은 두 대상 간의 유사점을 근거로 결론을 도출하는 귀납적 추론 방식으로, 페일리의 시계공 비유처럼 자연계의 복잡성과 인공물의 설계 간 유사성을 통해 신의 존재를 추론하는 데 사용된다.

- "미세 조정 논증(fine-tuning argument)"은 우주의 물리적 상수들이 생명체 존재에 적합하도록 정밀하게 조정되어 있다는 관찰을 바탕으로, 이러한 정교한 조정이 의도적인 설계자의 존재를 시사한다고 주장하는 현대적 목적론적 논증이다.

- "단일 표본 추론의 한계"는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유일한 우주를 바탕으로 확률적 결론을 도출하는 데 따르는 방법론적 문제점을 지칭하며, 미세 조정 논증과 같은 확률적 접근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연습문제 2)


신(神)의 전지전능함과 선함에 대한 인식과 세상에 존재하는 악(惡)의 현실 사이의 모순은 종교철학 분야에서 '악의 문제(Problem of Evil)'라는 중대한 난제를 제기한다. 이 논리적 악의 문제는 신의 전지(全知), 전능(全能), 그리고 완전한 선(善)이라는 속성들과 악의 존재 간의 명백한 불일치에서 기인한다. 만약 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모든 악의 발생을 인지할 것이고, 전능하다면 악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며, 완전히 선하다면 악을 제거하고자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이 지속된다는 사실은 이러한 신적 속성들 간의 모순을 시사한다.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일부 유신론자들은 '변신론(theodicy)'이라 불리는 정당화 논리를 제시하는데, 이는 신의 존재와 악의 현존이 양립 가능함을 설명하려는 시도이다. 대표적인 변신론으로 '자유의지 옹호론(Free Will Defense)'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함으로써 선(善)을 극대화했다고 주장한다. 이 자유는 개인이 진정한 도덕적 선택을 할 수 있게 하며, 여기에는 '도덕적 악(moral evil)'—즉, 인간이 의도적으로 저지르는 부도덕한 행위—을 범할 가능성도 포함된다. 자유의지의 존재는 비록 그것이 악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더라도 진정한 도덕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 논리는 오직 도덕적 악만을 다루며, 지진이나 질병과 같은 자연 현상으로 인한 '자연적 악(natural evil)'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한다. 자연적 악을 설명하기 위해 철학자 존 힉(John Hick)은 '영혼 성숙 변신론(soul-making theodicy)'을 제안하여, 미완성 상태로 창조된 인간이 삶의 시련을 통해 덕성과 인격을 발달시킨다고 주장한다. 이 관점에 따르면, 세상의 고난과 고통은 영적 성장과 더 높은 선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집단 학살이나 대규모 자연재해와 같은 극단적 악의 규모와 강도가 영혼의 성숙이나 선악의 대비를 통한 이해에 필요한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고 지적한다. 이는 '증거적 악의 문제(evidential problem of evil)'로 이어지는데, 이는 왜 과도하고 불필요해 보이는 고통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일부는 이러한 심각한 악의 만연이 자비로운 신의 존재와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등장하는 이반(Ivan)처럼, 어떤 이들은 극심한 고통을 허용하는 신을 숭배하는 개념 자체를 거부하며, 상징적으로 천국행 "티켓을 반납"하기로 선택한다. 결과적으로 악의 문제는 신학과 철학 분야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심오한 쟁점으로 남아있어, 신성(神性)의 본질, 고통의 목적, 그리고 인간 이해의 한계에 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틀린 선택지>
- 변신론은 신이 자연적 악을 제거하기 위해 인간에게 영혼의 성숙을 촉진하는 자유의지를 부여했다고 주장한다.
- 자유의지 옹호론은 신이 인간의 도덕적 선택을 제한하여 자연적 악의 발생을 방지하려 했다고 설명한다.
- 존 힉의 영혼 성숙 변신론은 자연 재해와 같은 자연적 악이 영적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발생한다고 본다.
- 증거적 악의 문제는 모든 고통이 신의 자비로운 계획의 일부라고 주장하여 신의 존재를 정당화하려는 시도이다.
- 도스토옙스키는 신이 집단 학살을 통해 인간의 도덕성을 시험하며, 이를 통해 더 큰 선을 이루려 한다고 제안한다.

<힌트>
- 변신론은 자연적 악을 설명하기 위해 인간의 덕성과 인격 성장을 강조하지만, 자유의지를 통한 악 제거와는 관련이 없다.
- 자유의지 옹호론은 인간의 도덕적 선택의 자유를 강조하며, 자연적 악의 발생 방지는 언급하지 않는다.
- 존 힉의 이론에서는 자연적 악이 의도적으로 발생하지 않으며, 인간의 영혼 성장을 위한 시련으로 간주된다.
- 증거적 악의 문제는 과도하고 불필요해 보이는 고통의 존재를 지적하지만, 이를 신의 자비로운 계획으로 정당화하지 않는다.
- 도스토옙스키는 극심한 고통을 허용하는 신을 비판하며, 이를 통해 신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는 입장을 취한다.

<틀린 선택지>
- 신의 전지전능함과 선함에 대한 인식은 세상에 존재하는 선(善)의 현실과 모순되며, 이는 '선의 문제(Problem of Good)'라는 종교철학의 난제를 야기한다.
- 변신론은 신의 존재와 악의 현존이 양립 불가능함을 증명하려는 시도로, 대표적으로 '자유의지 억압론(Free Will Suppression)'을 들 수 있다.
- 자연적 악을 설명하기 위해 제안된 '영혼 성숙 변신론'은 인간이 완벽한 상태로 창조되었으나 삶의 시련을 통해 덕성과 인격이 퇴보한다고 주장한다.
- '증거적 악의 문제'는 왜 극소량의 고통만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이는 자비로운 신의 존재와 완벽히 양립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등장하는 이반(Ivan)은 극심한 고통을 허용하는 신을 무조건적으로 숭배하며, 상징적으로 천국행 "티켓을 받아들이기로" 선택한다.
<힌트>
- 지문에서는 '악의 문제(Problem of Evil)'를 언급하고 있으며, 이는 악의 존재와 신의 속성 간의 모순을 다룬다. '선의 문제'는 언급되지 않았다.
- 변신론은 신의 존재와 악의 현존이 양립 가능함을 설명하려는 시도이며, '자유의지 옹호론(Free Will Defense)'이 대표적 예시로 언급된다.
- '영혼 성숙 변신론'은 미완성 상태로 창조된 인간이 삶의 시련을 통해 덕성과 인격을 발달시킨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퇴보를 주장하지 않는다.
- '증거적 악의 문제'는 과도하고 불필요해 보이는 고통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이는 자비로운 신의 존재와 양립하기 어렵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 이반(Ivan)은 극심한 고통을 허용하는 신을 숭배하는 개념을 거부하며, 상징적으로 천국행 "티켓을 반납"하기로 선택한다.

<틀린 선택지>
- '악의 문제'는 신의 속성과 악의 존재 사이의 모순을 지적하는 논증으로, 신의 전지성을 부정하는 논리적 오류를 범한다.
- 자유의지 옹호론은 인간의 자유의지가 신의 전지전능함을 제한하는 유일한 요인임을 강조하며, 도덕적 악의 책임을 인간에게 전가한다.
- 영혼 성숙 변신론에 따르면, 극심한 고통은 영혼의 성장을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며, 이는 신의 선의와 모순되지 않는다.
- 증거적 악의 문제는 자연적 악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며, 도덕적 악의 문제와는 독립적인 논증이다.
- 이반 카라마조프는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무신론자로, 극심한 고통의 존재를 근거로 신의 선의에 의문을 제기한다.

<힌트>
- 첫 번째 선택지는 악의 문제가 신의 전지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지성과 전능성, 선함을 모두 가지고 있다면 악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적 모순을 지적하는 것임을 간과하고 있다.
- 두 번째 선택지는 자유의지가 신의 전지전능함을 제한하는 유일한 요인이라는  잘못된 정보를 담고 있다.
- 세 번째 선택지는 영혼 성숙 변신론이 극심한 고통을 정당화한다는 잘못된 내용을 담고 있다.
- 네 번째 선택지는 증거적 악의 문제가 도덕적 악과 자연적 악 모두를 포괄하는 개념임을 간과하고 있다.
- 다섯 번째 선택지는 이반이 무신론자가 아니라, 극심한 고통을 허용하는 신을 숭배하는 것을 거부하는 인물임을 잘못 설명하고 있다.

<이 글에서 얻어갈 개념 3가지>

- "변신론(theodicy)"은 신의 존재와 악의 현존이 양립 가능함을 설명하려는 시도로, 예를 들어 '자유의지 옹호론'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함으로써 선을 극대화했다고 주장한다.

- "영혼 성숙 변신론(soul-making theodicy)"은 철학자 존 힉이 제안한 개념으로, 인간이 삶의 시련을 통해 덕성과 인격을 발달시키며, 세상의 고난과 고통이 영적 성장과 더 높은 선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 "증거적 악의 문제(evidential problem of evil)"는 과도하고 불필요해 보이는 고통의 존재가 자비로운 신의 존재와 양립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개념으로, 예를 들어 집단 학살이나 대규모 자연재해와 같은 극단적 악의 존재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다.



(연습문제 3)

인식론적 책임(epistemic responsibility)은 개인의 신념 체계에 관한 도덕적 의무를 지칭하며, 이는 충분한 증거로 뒷받침되는 신념만을 수용해야 한다는 원칙을 내포한다. 철학자 W.K. 클리포드(W.K. Clifford)는 불충분한 증거를 바탕으로 어떠한 것을 믿는 행위는 항시 도덕적 과오라고 단호히 주장했으며, 이를 부주의한 선주(shipowner)의 우화를 통해 예시했다. 이 선주는 자신의 선박이 노후화되고 손상되어 점검이 시급함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리에 따르는 비용과 불편을 회피하고자 충분한 근거 없이 선박의 안전성을 스스로 확신했다. 선박이 침몰하여 수백 명의 승객이 사망했을 때, 클리포드는 선주가 비극적 결과뿐만 아니라 근거 없는 신념을 의도적으로 수용했다는 점에서 도덕적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클리포드는 실제로 어떠한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선주의 무책임한 신념 형성 자체로 인해 여전히 도덕적 과실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개인의 신념이 결코 순수하게 사적인 영역에 머물지 않으며,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타인에게 미묘한 영향을 끼쳐 잠재적으로 광범위한 해악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개념은 현대의 맥락, 특히 과학적 합의를 증거 없이 거부하여 예방 가능한 질병의 재발과 공중 보건의 위협을 초래하는 백신 반대 운동(anti-vaccination movement)과 같은 사례에서 특히 관련성이 높다. 클리포드의 견해와는 대조적으로,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특정 조건 하에서 증거 없이 특정 신념을 가지는 것이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제임스는 신념 형성에 있어서의 선택지(options) 개념을 도입하여, 이를 '실제적(live)' 또는 '죽은(dead)' 선택지(해당 신념이 개인에게 실제로 가능한지 여부), '강제적(forced)' 또는 '회피 가능한(avoidable)' 선택지(선택의 불가피성), 그리고 '중대한(momentous)' 또는 '사소한(trivial)' 선택지(결정의 중요성)로 분류했다. 그는 예를 들어 신에 대한 믿음이 실제적이고, 강제적이며, 중대한 선택지이므로, 경험적 증거 없이도 이러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제임스의 기준이 백신 반대 입장과 같은 다른 근거 없는 신념들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야기하며, 이러한 신념들 역시 일부 개인에게는 실제적이고, 강제적이며, 중대한 선택지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속적인 철학적 논쟁은 엄격한 증거주의(evidentialism)와 신앙에 기반한 신념의 수용 사이의 긴장관계를 부각시키며, 우리의 신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그 광범위한 함의를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인식론적 책임은 우리의 신념에 대해 충분한 증거를 요구하는 동시에, 실존적 고려사항이 신념 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간 경험의 복잡성을 인정한다. 궁극적으로, 인식론적 책임의 함양은 정보에 기반한 의사결정을 촉진하고 근거 없는 신념의 보유와 전파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해악을 완화하는 데 있어 필수적이다.

<틀린 선택지>
- 클리포드는 선주가 충분한 증거 없이 신념을 확신한 것은 경제적 손실을 초래했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 윌리엄 제임스는 모든 신념 형성이 경험적 증거에 의존해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클리포드의 입장을 지지했다.
- 클리포드는 인식론적 책임이 개인의 사적 신념에만 영향을 미치며, 사회적 행동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밝혔다.
- 백신 반대 운동이 과학적 합의를 지지하는 클리포드의 견해와 완전히 일치한다고 주장하였다.
- 클리포드는 증거 없이 신념을 형성하는 것이 특정 조건 하에서는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힌트>
- 클리포드는 충분한 증거 없이 신념을 확신하는 것을 도덕적 과오로 보았으며, 경제적 손실과는 관련이 없다.
- 윌리엄 제임스는 특정 조건에서는 증거 없이 신념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여 클리포드의 입장을 반대했다.
- 클리포드는 개인의 신념이 사회적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으며, 사적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음을 밝혔다.
- 백신 반대 운동은 과학적 합의를 거부하는 사례로 클리포드의 견해와 관련성은 있지만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 클리포드는 증거 없는 신념 형성을 도덕적으로 허용하지 않았으며, 이는 제임스의 주장과 대조된다.

<틀린 선택지>
- 클리포드의 주장에 따르면, 선박의 안전성에 대한 선주의 확신이 근거가 없었다는 점보다는 승객들의 사망이라는 비극적 결과가 도덕적 책임의 주된 근거가 된다.
- 제임스의 관점에서, 백신 반대 입장은 실제적이고 강제적이며 중대한 선택지이므로 경험적 증거 없이도 이를 믿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직접적으로 주장했다.
- 인식론적 책임은 개인의 신념 체계에 관한 도덕적 의무를 지칭하며, 이는 충분한 증거가 없더라도 개인의 직관과 경험에 기반한 신념을 우선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원칙을 내포한다.
- 클리포드와 제임스의 견해는 모두 신념 형성에 있어 증거의 중요성을 동등하게 강조하며, 단지 그 적용 범위에 있어서만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 현대의 맥락에서 인식론적 책임은 주로 개인의 사적 영역에 국한되며, 백신 반대 운동과 같은 사회적 현상과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고 볼 수 있다.
<힌트>
- 클리포드는 비극적 결과와 무관하게 근거 없는 신념 수용 자체를 도덕적 과실로 보았다.
- 제임스가 백신 반대 입장을 직접적으로 정당화했다는 언급은 없으며, 오히려 이는 제임스의 관점에 대한 우려사항으로 제시되었다.
- 인식론적 책임은 충분한 증거로 뒷받침되는 신념만을 수용해야 한다는 원칙을 내포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 클리포드와 제임스의 견해는 증거에 대한 입장에서 대조적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 개인의 신념이 사적 영역에 머물지 않고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되어 있으며, 백신 반대 운동이 구체적 사례로 제시되었다.

<틀린 선택지>
- 클리포드는 선주의 부주의함이 초래한 비극적 결과 때문에 선주에게 도덕적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만약 선박이 침몰하지 않고 무사히 항해를 마쳤다면 선주의 근거 없는 신념은 도덕적으로 문제 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 클리포드는 개인의 신념이 타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백신 반대 운동과 같이 과학적 합의를 거부하는 행위가 초래할 수 있는 잠재적 해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 제임스는 신념 형성에 있어 증거의 유무보다 개인의 주관적인 신념 체계를 더 중요하게 여겼으며, 따라서 개인이 특정 신념을 실제적이고 강제적이며 중대한 선택지로 받아들인다면 증거가 부족하더라도 그 신념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클리포드와 제임스는 개인의 신념 형성에 대한 인식론적 책임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의견을 같이했지만, 증거의 필요성과 개인적 신념의 가치 사이의 균형점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 제임스는 클리포드의 주장과는 달리, 실존적 고려사항이 신념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는 인간 경험의 복잡성을 고려할 때 불가피한 측면이라고 주장했다.

<힌트>
- 지문에서 클리포드는 실제 피해 발생 여부와 관계없이 근거 없는 신념 자체가 도덕적 과실이라고 주장했다.
- 지문에서 클리포드는 백신 반대 운동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의 주장은 과학적 합의를 거부하는 행위가 초래할 수 있는 잠재적 해악에 대한 우려를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 지문에서 제임스는 특정 조건, 즉 신념이 실제적이고, 강제적이며, 중대한 선택지일 때 증거 없이 신념을 가지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지문에서 클리포드와 제임스 모두 인식론적 책임의 중요성을 인정했지만, 증거의 필요성과 개인적 신념의 허용 가능성에 대한 입장 차이를 보였다.
- 지문에서 실존적 고려사항을 언급한 것은 제임스가 아니라 지문의 마지막 문장이다.

<이 글에서 얻어갈 개념 3가지>

- "인식론적 책임"은 개인이 충분한 증거로 뒷받침되는 신념만을 수용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를 의미하며, 예를 들어 과학적 합의를 무시하고 근거 없이 백신을 반대하는 것은 이러한 책임을 저버리는 행위이다.

- "제임스의 선택지 개념"은 신념 형성에 있어 '실제적/죽은', '강제적/회피 가능한', '중대한/사소한' 선택지로 분류되며, 이를 통해 때로는 경험적 증거 없이도 특정 신념을 가지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증거주의"는 모든 신념이 충분한 증거에 기반해야 한다는 철학적 입장으로, 클리포드의 주장처럼 불충분한 증거로 형성된 신념은 잠재적으로 해로울 수 있다는 관점을 반영한다.



(연습문제 4)


실존주의(Existentialism)는 인간의 존재가 본질에 선행한다는 혁신적 사상을 제시하며, 개인이 선천적 목적이나 본성을 지니고 태어난다는 본질주의(Essentialism)적 관념에 도전장을 내민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대표되는 본질주의 철학은 만물이 그 정체성과 기능에 필수적인 핵심 속성, 즉 '본질'을 보유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와 같은 실존주의 사상가들은 인간이 내재된 의미, 목적, 또는 선험적 도덕 규범이 부재한 우주에 태어난다고 역설한다. 이러한 조건은 인간의 본능적 의미 추구와 무관심한 우주 사이의 괴리를 일컫는 '부조리(the absurd)'를 야기한다. 부조리에 직면한 개인은 '자유 선고(condemned to be free)'를 받아, 진정성 있는 선택과 행위를 통해 자신의 본질을 구축해야 하는 중대한 책무를 지게 된다. 이러한 급진적 자유는 외부 권위나 기성 체계에 의존하지 않고 개인적 가치와 의미를 창출할 것을 요구한다. 사르트르는 이러한 책임을 회피하고 사회적 기대나 권위적 지시를 따름으로써 자유의 부담을 피하려는 자기기만을 '악의(mauvaise foi)'라고 규정한다. 진정한 실존을 위해서는 자신의 자유와 인간 조건의 부조리를 수용하며 자아정의적 경로를 개척해야 한다. 이러한 자유는 위압적일 수 있으나, 동시에 개인에게 삶에 고유한 의미를 부여하여 존재를 수동적 상태에서 목적의 능동적 추구로 변모시킬 수 있는 역량을 제공한다. 사르트르는 가족에 대한 의무와 대의명분에 대한 헌신 사이에서 갈등하는 학생의 딜레마를 예로 들어, 어떠한 외부 도덕 체계도 이러한 개인적 갈등을 해결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내재적 의미나 우주적 정의가 부재한 상황에서, 실존주의는 개인이 자신의 본질을 정의하는 진정성 있는 선택을 통해 존재를 탐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철학은 우주가 내재적 목적을 결여하고 있더라도, 인간은 의식적 행위를 통해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시사한다. 부조리를 인정하고 자유를 온전히 수용함으로써, 개인은 허무주의를 초월하여 의미 있고 자기주도적인 삶을 구축할 수 있다. 따라서 실존주의는 의미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창조되는 것이라는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인간 경험에 내재된 심오한 자율성과 책임을 부각시킨다. 이러한 관점은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창출하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실존주의적 사고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정체성과 삶의 방향성을 탐구하는 데 있어 여전히 중요한 철학적 도구로 작용하고 있으며, 우리로 하여금 삶의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해 깊이 있게 성찰하도록 촉구한다.

<틀린 선택지>
- 실존주의는 인간이 선천적으로 정해진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며, 이러한 본성이 개인의 선택을 제한한다고 주장한다.
- 본질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이 존재 전에 본질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믿으며, 실존주의와 동일한 관점을 공유한다.
- 장 폴 사르트르는 인간이 우주에 내재된 목적을 발견하여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 실존주의는 외부 권위와 기성 체계에 의존함으로써 개인의 자유를 증진시킨다고 본다.
- 부조리는 인간이 자유를 선택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으며, 별도의 노력이 필요 없다고 본다.

<힌트>
- 실존주의는 인간이 선천적 목적이나 본성을 지니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본질을 스스로 만들어간다고 주장함.
- 본질주의는 실존주의와 반대되는 입장으로, 인간의 본질이 존재에 선행한다고 믿음.
- 사르트르는 우주에 내재된 목적이나 의미가 없다고 보았으며, 인간이 스스로 의미를 창조해야 한다고 주장함.
- 실존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며, 외부 권위나 기성 체계에 의존하지 않을 것을 강조함.
- 실존주의는 부조리에 직면한 개인이 자유를 통해 자신의 본질을 구축해야 한다고 보아, 부조리를 자연스럽게 해결된다고 보지 않음.

<틀린 선택지>
- 실존주의는 본질주의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선천적 목적과 본성을 지니고 태어난다고 주장하며, 이를 바탕으로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강조한다.
- 사르트르의 '악의' 개념은 개인이 사회적 기대나 권위적 지시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 부담을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 실존주의 철학에서 말하는 '부조리'는 인간의 본능적 의미 추구와 우주의 무관심 사이의 조화를 의미하며, 이는 개인에게 삶의 목적과 방향성을 제시한다.
-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개인의 갈등 상황에서는 보편적 도덕 체계나 외부 권위에 의존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다.
- 실존주의 철학은 우주에 내재된 목적과 의미가 존재한다고 전제하며, 개인은 이를 발견하고 따르는 과정에서 진정한 자아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힌트>
- 실존주의는 본질주의와 대조적으로, 인간이 선천적 목적이나 본성 없이 태어난다고 주장한다. 개인의 자유와 책임은 이러한 전제 하에 강조된다.
- 사르트르의 '악의' 개념은 자유의 부담을 피하기 위해 사회적 기대나 권위적 지시를 따르는 자기기만을 의미한다. 자유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악의의 반대 개념이다.
- '부조리'는 인간의 의미 추구와 우주의 무관심 사이의 괴리를 의미하며, 이는 개인에게 삶의 목적과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혼란을 야기한다.
- 실존주의는 개인적 갈등 상황에서 외부 도덕 체계나 권위가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대신 개인의 진정성 있는 선택을 강조한다.
- 실존주의는 우주에 내재된 목적이나 의미가 없다고 전제한다. 개인이 의식적 행위를 통해 삶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틀린 선택지>
- 본질주의는 인간이 무의미한 존재로 태어나 사회적 규범과 외부 권위를 통해서만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 실존주의에 따르면, 인간은 자유 선고를 받았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책임이나 사회적 연대 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 사르트르는 학생의 딜레마를 통해 사회적 기대와 개인의 욕망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 실존주의는 우주에 내재된 목적과 의미를 인정하며, 개인이 이를 발견하고 따르는 삶을 강조한다.
- 실존주의는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가치관과 도덕 체계에 의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힌트>
- 본질주의는 인간이 선천적인 본성과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주장하며, 실존주의는 외부 권위보다는 개인의 선택과 책임을 강조한다.
- 실존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지만,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책임을 다하는 윤리적 삶을 배제하지 않는다.
- 사르트르는 외부의 도덕 체계가 개인의 선택을 결정할 수 없으며, 개인은 자신의 주체적 판단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 실존주의는 우주에 내재된 목적이 없다고 보고, 오히려 개인이 자신의 행동을 통해 삶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실존주의는 전통적인 가치관이나 외부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개인의 자유 의지와 선택을 통해 허무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이 글에서 얻어갈 개념 3가지>

- "부조리(the absurd)"는 인간의 본능적 의미 추구와 무관심한 우주 사이의 괴리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예를 들어 우리가 삶의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지만 우주는 그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 상황을 의미한다.

- "자유 선고(condemned to be free)"는 실존주의에서 인간이 필연적으로 자유롭게 선택하고 행동해야 하는 운명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이는 축복이자 동시에 무거운 책임으로 작용한다.

- "악의(mauvaise foi)"는 사르트르가 제시한 개념으로, 개인이 자신의 자유와 책임을 회피하고 사회적 기대나 권위에 순응함으로써 자기기만에 빠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연습문제 5)


실용주의(pragmatism)는 추상적 진리보다 실제적 결과를 중시하는 철학 사조로, 믿음의 가치는 그 경험적 진실성보다는 삶을 영위하는 데 얼마나 효과적인지에 있다고 주장한다. 17세기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은 '파스칼의 내기(Pascal's Wager)'라는 개념을 통해 신의 존재 문제에 실용적 추론을 적용했다. 그는 이성만으로는 신의 존재를 확실히 증명하거나 반증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개인은 믿음 여부를 맹목적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스칼은 비용-편익 분석을 제시하며, 신을 믿고 신이 존재한다면 보상은 무한한 영원한 구원이고, 신을 믿었는데 신이 없다면 손실은 미미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신을 믿지 않고 신이 존재한다면 결과는 무한한 처벌인 영원한 저주이며, 신을 믿지 않았는데 신이 없다면 이득은 거의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파스칼은 잠재적 이익을 최대화하고 손실을 최소화하는 실용적 선택은 신을 믿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파스칼의 내기에 대한 비판자들은 단순히 실용적 내기로 믿음을 채택하는 것이 포기된 쾌락이나 엄격한 도덕 규범 준수와 같은 믿음의 실제 비용을 간과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파스칼은 믿음 자체가 삶에 의미와 질서, 위안을 제공함으로써 본질적으로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그는 종교적 관행에 참여하고 신앙 공동체에 몰입함으로써 진정한 믿음을 키울 수 있다고 제안했는데, 이는 본질적으로 '진짜가 될 때까지 가짜로 행동하라(fake it till you make it)'는 방법론을 통해 진실한 확신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성을 넘어선 신앙이라는 주제를 발전시키며, 19세기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Soren Kierkegaard)는 '피데이즘(fideism)'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이는 종교적 믿음이 이성적 증거를 배제하고 오직 신앙에서만 비롯된다고 주장하는 입장이다. 키르케고르는 '신앙으로의 도약(leap to faith)'을 제안하며, 이를 부조리하기 때문에 오히려 증거 없이 믿음을 받아들이는 실존적 행위로 설명했다. 이 개념은 영화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Indiana Jones and the Last Crusade)'에서 생생하게 묘사되는데, 주인공이 성배를 얻기 위해 보이지 않는 것을 신뢰하며 논리를 포기하고 실제로 낭떠러지를 뛰어넘는 장면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실용주의와 피데이즘은 경험적 증거 없이 믿음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지만, 단순히 유용성이나 비합리적 도약만을 근거로 믿음을 채택하는 것의 타당성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의 찻주전자 비유는 근거 없는 믿음의 문제점을 강조한다. 우주의 어딘가에 떠도는 찻주전자의 존재를 반증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 존재를 믿을 정당성이 생기지 않듯이, 증거 없는 믿음은 어떠한 근거 없는 개념도 쉽게 받아들이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믿음의 기준으로서 이성과 증거를 포기하면 모든 믿음이 동등하게 근거 없는 것이 되어, 위험하거나 부당한 교리를 신앙이라는 명목 하에 정당화할 수 있다. 따라서 실용적 믿음과 신앙으로의 도약에 대한 논의는 믿음의 실질적 이점과 증거에 기반한 이성적 추론의 철학적 필요성 사이의 긴장을 부각시킨다. 궁극적으로, 실용주의는 삶을 향상시키는 믿음의 유용성에 가치를 두고, 피데이즘은 그 부조리함에도 불구하고 신앙 자체를 본질적 가치로 받아들이지만, 두 접근 방식 모두 믿음 체계를 이끄는 데 있어 이성의 우위성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틀린 선택지>
- 실용주의는 추상적 진리보다 도덕적 규범의 절대적 준수를 중시하며, 삶의 의미는 규범의 엄격한 적용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 블레즈 파스칼은 '파스칼의 내기'를 통해 신의 존재를 이성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믿음의 선택은 불필요하다고 보았다.
- 쇠렌 키르케고르는 '피데이즘'을 통해 신앙을 이성과 조화시켜, 증거에 기반한 신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버트런드 러셀은 찻주전자 비유를 통해 근거 없는 믿음을 옹호하며, 모든 종교적 믿음은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 실용주의와 피데이즘은 모두 경험적 증거를 중시하며, 믿음의 형성에 있어 이성적 분석을 필수적으로 고려한다고 본다.

<힌트>
- 실용주의는 실질적 결과를 중시하지만 도덕적 규범의 절대적 준수를 주장하지 않는다.
- 파스칼은 '파스칼의 내기'를 통해 신의 존재 증명이 불가능함을 강조하고, 실용적 선택을 제안했다.
- 키르케고르는 '피데이즘'에서 신앙이 이성을 배제한다고 주장했다.
- 러셀은 찻주전자 비유를 통해 근거 없는 믿음의 문제점을 지적했으며, 이를 옹호하지 않았다.
- 실용주의와 피데이즘은 경험적 증거 없이 믿음을 채택하는 점에서 공통되지만, 이성적 분석을 중시하지 않는다.

<틀린 선택지>
- 실용주의는 추상적 진리와 실제적 결과를 동등하게 중시하며, 믿음의 가치는 경험적 진실성과 삶의 효용성에 균형 있게 기반한다고 주장한다.
- 파스칼의 내기는 신의 존재를 이성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신을 믿지 않는 것이 잠재적 이익을 최대화하는 실용적 선택이라고 결론짓는다.
- 키르케고르의 피데이즘은 종교적 믿음이 이성적 증거와 신앙의 조화를 통해 형성된다고 주장하며, '신앙으로의 도약'을 합리적 사고의 정점으로 설명한다.
- 버트런드 러셀의 찻주전자 비유는 근거 없는 믿음의 정당성을 강조하며, 증거 없는 믿음도 충분히 가치 있고 유용할 수 있다는 점을 역설한다.
- 실용주의와 피데이즘은 모두 이성과 증거에 기반한 추론을 믿음 체계의 핵심으로 간주하며, 경험적 증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힌트>
- 실용주의는 추상적 진리보다 실제적 결과를 중시하며, 믿음의 가치를 삶의 효용성에 둔다고 명시되어 있다.
- 파스칼의 내기는 이성만으로는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고 보며, 신을 믿는 것이 실용적 선택이라고 결론짓는다.
- 키르케고르의 피데이즘은 종교적 믿음이 이성적 증거를 배제하고 오직 신앙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하며, '신앙으로의 도약'을 부조리한 것으로 설명한다.
- 러셀의 찻주전자 비유는 근거 없는 믿음의 문제점을 강조하며, 증거 없는 믿음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 실용주의와 피데이즘은 모두 이성의 우위성에 도전하며, 증거에 기반한 이성적 추론과는 다른 접근 방식을 제시한다.

<틀린 선택지>
- 파스칼은 신앙을 가진 삶이 비록 고난과 희생을 수반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더 큰 만족과 의미를 제공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쾌락이나 편의를 포기해야 한다는 비판에 반박했다.
- 키르케고르는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시도들을 비판하며, 신앙은 오직 개인의 주관적인 결단과 도약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 러셀의 찻주전자 비유는 신앙에 대한 실용주의적 접근 방식을 옹호하며, 경험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믿음이라도 실용적인 가치를 지닐 수 있다고 주장한다.
- 실용주의는 개인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믿음을 추구하는 반면, 피데이즘은 이성적 사고를 통해 종교적 진리를 객관적으로 증명하려는 시도를 강조한다.
-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주인공이 보이지 않는 다리를 건너는 장면은 이성적 판단보다는 신앙에 기반한 결단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실용주의적 관점을 잘 드러낸다.

<힌트>
- 파스칼은 신앙 자체가 삶에 의미와 질서, 위안을 제공함으로써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주장했으므로, 고난이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내용은 지문에서 찾을 수 없다.
- 키르케고르는 실용주의를 비판했다는 내용은 지문에서 찾을 수 없다. 키르케고르는 '피데이즘'을 주장했으며, 이는 종교적 믿음이 이성적 증거를 배제하고 오직 신앙에서만 비롯된다고 보는 관점이다.
- 러셀의 찻주전자 비유는 근거 없는 믿음의 문제점을 강조하는 비유이므로, 실용주의적 접근 방식을 옹호하는 내용이 아니다.
- 피데이즘은 이성적 사고를 배제하고 신앙을 강조하는 입장이므로, 이성적 사고를 통해 종교적 진리를 증명하려는 시도를 강조하는 내용과는 거리가 멀다.
- '인디아나 존스'의 주인공이 보이지 않는 다리를 건너는 장면은 이성적 판단보다는 신앙에 기반한 결단, 즉 '신앙으로의 도약'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실용주의적 관점보다는 피데이즘적 관점에 가깝다.

<이 글에서 얻어갈 개념 3가지>

- "파스칼의 내기"는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한 실용적 추론 방식으로, 믿음의 잠재적 이익과 손실을 비교하여 신을 믿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주장하는 개념이다.

- "피데이즘"은 종교적 믿음이 이성적 증거 없이 오직 신앙에서만 비롯된다고 주장하는 철학적 입장으로, 키르케고르의 '신앙으로의 도약' 개념을 통해 설명되며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한 장면으로 상징적으로 표현된다.

- "러셀의 찻주전자 비유"는 증거 없는 믿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철학적 사고실험으로, 우주의 어딘가에 떠도는 찻주전자의 존재를 반증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 존재를 믿을 정당성이 생기지 않는다는 점을 통해 근거 없는 믿음의 위험성을 강조한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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