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국어에서의 직관
안녕하세요, 수능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쑥과마늘입니다.
지금이 아니면 써볼 일이 없을 것 같아 ‘국어에서의 직관’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드릴 말씀은 '강사'가 언급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내용이거든요.
여기에서 말하는 '직관'은 수학에서 말하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기출을 보면서 이야기하는 게 빠를 것 같네요.
다음은 2023학년도 6월 ‘향아’ 지문의 <보기>의 한 구절입니다.
(가)는 물질문명의 허위와 병폐에 물들어 가는 공동체가 농경 문화의 전통에 바탕을 두고 건강한 생명력과 순수성을 회복하기를 소망하는 작가 의식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보기> 문제에 딸린 1번 선지입니다.
(가)에서 ’차라리 그 미개지에로 가자‘라는 화자의 권유는 공동체의 터전을 확장하여 순수성을 지켜 나가려는 의식을 보여주는군.
정확한 풀이로 풀자면, ‘확장’이라는 단어를 긋고 고르는 게 맞습니다.
근데 지금 칼럼 제목이 ‘국어에서의 직관’이잖아요?
저는 현장에서 이 문제를 풀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생명력과 순수성을 회복하기를 소망한다면,
지금 현재는 생명력과 순수성이 결핍된 상황 아닌가?
그렇다면 없는 순수성을 ‘지켜 나갈’ 수 없는 거 아닌가?
사후적으로 분석하자면,
‘회복’이라는 개념은 ‘결핍’을 전제로 하지 않습니다.
체력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물약을 먹고 회복할 수도 있으니까요.
비슷한 예시를 몇 가지 더 보여드릴게요.
다음은 2024학년도 9월 모의평가 34번 문제의 <보기> 중 일부입니다.
(가)의 자연은 속세와 구별되는 청정한 이상 세계로 그려지며, 신선의 이미지를 통해 탈속적이고 고고한 가치를 추구하는 곳이다.
그리고 그 <보기> 문제에 딸린 1번 선지의 일부입니다.
‘(나)의 ’생매‘는 고고한 취향을 사실적으로 보여 주는 소재이군.’
여기서도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고고한 가치는 (나)가 아니라 (가) 아닌가?
더 봐보죠.
2019학년도 6월 모의평가 ‘우포늪 왁새’ 지문 <보기> 문제의 정답 선지입니다.
날아가는 왁새와 완창을 한 소리꾼을 대비하여 자연과 인간이 통합된 예술의 형상을 사실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이 지문은 앞서 말씀드린 것과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강사들마다 해석이 갈리거든요.
쟁점은 두 가지입니다.
1. ‘대비’를 허용할 수 있는가?
2. ‘사실적’을 허용할 수 있는가?
강사의 입장에서는 특정 관점만을 선별하여 가르쳐야 하지만,
수험생 입장에서는 ‘어쨌든 정답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즉, ‘의심점’을 파악하자는 것이 이 글의 요지입니다.
이 의심점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면 직관을 활용하기 용이해집니다.
논란이 많은 2024학년도 수능 34번 <보기> 문제의 정답 선지 중 일부입니다.
(나)는 ‘청산’에서의 삶에서 느끼는 자랑스러움을 ‘야인 생애’로 표현하여 겸양의 태도를 드러내는군.
저는 현장에서 시제 논리나 ‘자랑스러움’의 여부에 대해 판단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자랑스러움’과 ‘겸양’은 뭔가 충돌하는 느낌이 들어 의심점을 잡고 선지를 골랐습니다.
분명 이상적으로는 잘 읽고 잘 푸는 게 정답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분명 막히는 순간이 한번은 찾아옵니다.
그 막히는 순간을 대비하지 않으면 그 구간은 약점이 됩니다.
‘배움’의 입장에서는 논리적인 풀이를 체득하되,
‘문제풀이’의 관점에서는 의심점을 도입해보는 걸 권장합니다.
그러면 적어도 정답을 맞힐 확률이 조금이나마 높아진다고 감히 자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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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적은듯??
아 미리 써뒀던 거구나 ㅋㅋㅋ 칼럼은 7ㅐ추야
지문보다는 선지와 보기만을 가지고도 할 수 있다는 저희 학교쌤과 어느 정도 유사한 의견 같구만유
확실하지는 않아도 의심할 만한 풀이는 가능하다는 게 핵심입니다
감각적 직관 ㄷㄷ
??? : 감각적으로 직관이 들어와야 해
확실히 명확한 근거없는 풀이긴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는 그런게 있으면 찍어요.
그리고 이런건 싹다 문학임
약간 '문학에서의 감' 이란게 있는건 알지만 막상 또 이렇게 체계적으로 분석해보시는걸 보니 좀 다른것 같네요 ㅋㅋ
솔직히 정합적이냐고 물으면 아니지만 마지막 비기로 나쁘지 않다는ㅎㅎ
문학 저런 감을 과하게 쓰면 17분대도 나오긴 하던데 그러다가 정답률 확 떨어질때도 많아서 조절이 필요한것 같긴 해요
말하신대로 마지막 수단도 괜찮은것 같네요
결국 시험장에서 맞으면 장땡이죠
맞아요 이 칼럼의 내용은 오직 실전에서만 유용하죠
하지만 그렇기에 의미가 있을 것 같아 다뤄봤습니다
1. 정서 파악하고 이에 따른 허용 가능성으로 판단
2. 객관적 설명상 불일치나 모순이 있는지 판단
수능 국어 문학을 이렇게 접근하는데 많이 유사하네요
피렘님 들으셧나 ㄹㅇ
시험장에서의 감각적 직관이 이런 거군요
이게 생각보다 나쁘지 않습니다ㅎㅎ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짜 정말 좋은 글 이네요
좋게 평가해주시다니 감사합니다:)
누추한 곳에 귀한 분이!
과외나 현강을 들을 여건이 못 돼서 그런데 혹시 추천하시는 인강 강사님이나 교재 있을까요?? 쓰신 글 읽어보니 제가 생각하는 국어의 방향과 비슷한 것 같아서요!
헉 어느 부분이 어렵게 느껴졌나요
사실 저도 뭐가 맞는 풀이인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수험생 입장에서 고를 수만 있을 뿐
몸이 발작을 일으켜요 ㄷㄷ
그런 의미에서 존경합니다...! 칼럼 가끔씩 챙겨봤습니다
아유 감사합니다
예전에 오르비에서 본 적 있던 이원준T의 풀이 냄새가 솔솔 나네요...그 글에서는 [귀한 대접을 받으며 산다는 것은 여러 사람들의 시중을 받으며 사는 것이기 때문에 적막한 분위기일 수 없다] 라며 선지 내에서 제공하는 어휘의 엄밀한 정의를 사용하더라고요.
비문학에서도 이런 풀이가 유용했던 경험이 있는데, 느낌만 대충 흉내내보자면....예를 들어서 "유사하다"는 표현이 있다면 'A와 B가 유사하려면 절대 A = B 일 수 없겠구나. 이 선지가 말하고자하는 바는 결국 둘 사이의 유사성이 아닌, 되려 완벽한 구분이구나' 라고 정리했던 기억이 납니다.
22수능 같은 경우 가까운 것은 친하기 쉽다는 근거가 지문에 있었습니다
적막하다의 사전적 정의를 알았다면 더 간단했겠죠
겸양 빼고 다 직관에 납득이 됨... 근데 겸양은 진짜 잘 모르겠어요 ...정석도 시제로 보는 건 그나마 사후적으로 납득가능한데 자랑스러움 여부는 진짜 납득불가...
엄밀하게는 자랑스러움이 틀렸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입장이 갈리더라고요
그래도 님처럼 찍는 사고를 갖춰야할 듯 무조건 막히는 문제 하나는 있을테니 구조가 어색해보이는 거로 찍기 맞져?
네 의심점이 있는 선지를 찍는 게 제일 확률이 높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