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지 않은 고백 [531407] · MS 2014 (수정됨) · 쪽지

2016-02-24 01: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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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종마녀썰<17> 우리의 새내기 생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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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있었던 일이라며 오늘 A군이 풀어준 썰 그리고 저의 OT 뒷풀이썰을 적어봅니다. 
아직 이들의 풋풋함에 경의를 표하지 못하시는 분들은 아래 글을 읽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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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A군은 대학 OT를 마치고 과별 뒷풀이가 있는 날이었다. A군은 술을 너무 싫어하고 그만큼 술자리도 싫어하지만 신입생이기에 반강제로 뒷풀이를 갔다. 
비록 B양과 같은과라 하지만 그들이 속한 과는 인원이 상당히 많아 그들이 같은 테이블에 앉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A군은 지난번 신환회 뒷풀이 자리에서 B양을 한 번 놓친 경력이 있기에 이번만큼은 꼭 같은 테이블에 안겠다고 다짐하며 OT 진행 내내 B양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B양을 발견했고 과별 이동하는 순간에도 그녀를 주시했다. 하지만 우연찮게 지난번에 친해진 친구와 이야기 하는 바람에 그녀의 행방을 놓쳐버렸다. 안그래도 체구가 작은 그녀는 그렇게 많은 인파 속에 사라졌다. 
허탈하게 도착한 A군. 그가 속한 테이블에도 여자는 많았다. 무려 8명 중 5명. 상대적으로 오늘 뒷풀이에 참여한 여성이 적은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복받은 거다. 하지만 A군은 마음이 아프다. 여자들도 여자로 느껴지지가 않는다.
같은 테이블에 있는 여학생들이 찌개를 앞접시에 뜨고 있는데 도와주기는 커녕 멍하니 애꿋은 소주잔만 쳐다보며 오히려 여학생들이 엄마처럼 앞접시에 찌개를 떠다주는 것을 고맙게 받아 먹고만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고개를 돌린 A군은 신기한 광경을 보게 된다. 오른쪽 대각선 테이블에 B양이 앉아 있는 것. 친구도 꽤 많이 사겼는지 이제 웃으면서 이야기도 한다. 그저 신기하다. 재수학원 식당 오른쪽 대각선에서 제2외국어 단어장을 보며 급식을 먹던 그녀는 이제 어느덧 화장끼가 살짝 묻어있어 더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있다. 그저 놀랍다. 자기소개도 한다. 그 누구보다 당차고 자신있게 자신의 나이와 이름을 밝힌다. 근 1년만에 처음 듣는 그녀의 목소리가 왁자지껄한 술집에서도 귀에 쏙쏙 박힌다. 술게임도 한다. 수줍게, 하지만 당차게 게임을 이어나간다. 노래 한소절도 하고 박자도 잘 맞춘다. 게임에서 졌는지 두 볼을 크게 감싸며 인상을 찡그리며 술도 마신다. 그런 B양을 사람들을 다들 좋아해주는 거 같다. 술 마시느라 고생했다고 격려도 해주고 말도 잘 걸어주고.. 마치 지난 1년간 그녀의 독방같은 세월을 보상받는 듯 하다 그런 중에 A군의 테이블에도 술게임이 벌어진다.
전에도 말했지만 A군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똑똑하고 말잘하고 적당히 쌩뚱맞아 분위기가 부드럽게 만들 줄도 안다. 그런 A군에게도 찬사는 쏟아진다. 
'ㅋㅋ 이거 골뱅이 좋아해요?? 더 먹을래여??'
'술게임 잘하시네요 ㅋㅋ 공부만 하는 범생인 줄 알았는데 아니 술게임도 공부하신건가 ㅋㅋ'
'뭔가 되게 공부 잘하시게 생겼어요!! 저 97인데 오빠라 해도 되요?'
'나중에 저 수강신청 도와주세요ㅜㅜ 뭔가 잘 아실 거 같아ㅋㅋ'
여성들은 초면임에도 유난히 A군에게 관심을 표한다. 
'아 주면 감사하죠ㅎㅎ 감사합니다 꾸벅'
'술게임 공부.. 라기 보다는 그냥 체험이죠 체험'
'오빠요? ㅋㅋ 그냥 편하게 부르세요 오빠라고 하셔도 되고ㅋㅋ 전 계속 존대할게요'
'아니 제 앞가림도 못하는데 ㅋㅋ ㅜㅜ'

술이 들어가서인지 아님 A군도 남자인건지 기분이 좋아져가지고 그냥 편하게 여학생들과 농담따먹기를 즐기고 있었다. 웃으면서 이제 안주도 직접 접시에다가 가져다준다. 그렇게 서로가 가까워질 무렵 A군은 고개를 돌리다가 우연찮게 B양과 눈이 마주친다. A군을 봐서 놀란건지, A군이 여자와 노는 모습이 아니꼬운건지 아님 원래 표정이 그런건지 그녀의 표정은 냉담해있다. 그렇게 그 둘은 한참동안 서로를 응시하다가 다시 각자 테이블의 구성원이 된다. 
대학 술자리를 가보면 화장실을 왔다갔다하고 그러다보면 자리가 이리저리 뒤섞이게 된다. A군도 다르지 않았다. 화장실을 갔다오니 남자 선배 한 분이 그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A군은 술이 취했는지 다짜고짜 B양 앞자리에 앉아버린다. A군 인생 최초의 남자다운 행동이다. 그 테이블에 A군이 아는 인간이라곤 한 명도 없었다. B양 빼고. 
'아 누구세요? 반갑습니다!'
사실 술자리에서 갑자기 남의 자리 앉았다고 너 누구야 가 이런 사람은 없다. 술 한잔 따라주면서 그렇게 친구가 되는거다. 
'옆 테이블 있었는데 누가 자리를 뺏어서 ㅋㅋ 아 혹시 번호 좀 알 수 있을까요?'
그렇게 쉽게 번호를 교환하고 쉽게 친해질 수 있는 게 술자리의 특징이다. 그리고 쉽게 술게임도 시작된다. 
'딸기 딸기 딹 으악..'(딸기 게임이다. A군은 박자를 놓쳤다.)
'딸기 당근 수박 메론.. 아..'(딸기 당근 수박 참외 메론 게임이다. A군은 순서가 틀렸다.)
'어.. 두부 3모?! 아...'(두부 게임이다. A군은 자기를 의미하는 두부 3모를 외쳐버렸다.)
A군은 긴장했는지 자꾸만 게임에서 진다. 술도 잘 못하는 녀석이... 그래도 그 테이블 남아있겠다고 연거푸 술을 마신다. 그런 A군의 속을 모르는지 선배들은 짖궂게 술을 잔에 가득 채워주시고늦게 마셨다며 A군에게 한 잔 더를 외치며 빨리 마시라며 노래를 부르면서 그를 독촉한다. 그는 힘겨워한다. 과음에서 올라오는 취기와 어지러움도 그를 괴롭혔지만 그를 더욱 괴롭히는 건 관심에 대한 갈망이었다. 
'아 이렇게 벌칙 걸렸으면 한 번쯤은 말 걸어줄 법도 한 거 아닌가..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인데.. 설마 날 그동안 싫어했던건가.. 어쩌면 지금 내가 민폐끼치는 거일지도..'
그렇게 결핍된 관심을 자책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게임. 
'더 게임 오브 데스! 18'(모두가 1인당 손가락 하나씩 지목한다. 숫자를 외치면 손가락이 가리키는 사람이 돌고 돌아 그 수에 해당하는 사람이 걸리는 게임이다. 아마 이해안될거다 어차피 글읽는데 방해안되니..)
귀신같이 또 A군이 걸렸다. 본인이 걸리기도 참 어려운 이 게임인데... 
'아 또 너냐 ㅋㅋㅋㅋ'
'오늘 00이 죽는구나 ㅋㅋㅋ'
A군은 죽어가는 소리로 말한다.
'못 마시겠어요...'
하지만 절대 그냥 넘어가는 법 없는 선배들
'어 빼는거야 지금? 어?!'
'아...'
A는 그냥 뻐긴다. 
'얘 뭐야 ㅋㅋㅋㅋ'
그러던 중 앞에 있던 B양은 A군에게 술잔을 민다. 
'하.. 얘마저.. 그냥 마시고 조용히 가라는 거구나.. 에휴'
그렇게 A는 B양이 내민 잔을 마신다. 
'야 쟤 마셨다 ㅋㅋ 아오 잠시 쉬자 ㅋㅋ'
A가 마신건 술이 아니었다. 물이었다. B양은 술마시길 힘들어하는 A를 위해 물을 따라 내민 것. 잔을 비운 A군과 그 앞에 앉은 B양. 모두가 핸드폰을 만지고 잠시 누워있고 화장실을 간 사이. 그 둘은 서로의 눈망울만을 초롱초롱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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